기자가 만난 직업인

정주영 기획<1>불가능은 없다

이영남기자 2009. 3. 20. 09:41

(앵커멘트)
 이번 주 토요일은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이 타계한지 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ubc 울산방송은 정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통해 세계적 경제위기 극복의 해법을 찾아보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첫 순서로 그의 삶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불굴의 정신을 이영남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1972년 작은 어촌이던 울산 미포만 백사장.

 공장을 지으면서 동시에 배를 만드는 세계 조선사에 유례없는 대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인서트)정주영
 "획기적인 이 대사업의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우리는 근면으로..."

 

 모두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지만,사업 계획서와 백사장 지도,거북선이 그려진 지폐 한장만 들고 영국 조선회사를
찾았던 정주영 회장은 당당했습니다.

 

 인터뷰)찰스 롱바텀/애플도어사
"그는 지갑에서 이돈(5백원 지폐)를 보이면서 우리가 옛날 이런배를 만들었다.세계적인 조선소를 세우고 싶다고 말했죠.

 

 결국 배를 살 사람만 구해오면 차관을 해주겠다는 답변에 정 회장은 유조선 2척을 주문받는데도 성공합니다.

 

인서트)정주영/현대그룹 창업자
" 배 계약서하고 계약금을 받은 것을 영국 정부에 보여주자 영국 정부가 승인을 했지,배가 팔린
다는 증거가 있으니까."

 

 수만명이 주야간없이 작업에 몰두한지 2년3개월 뒤 조선소가 완공됐고 26만톤급 유조선 1,2호도 처음 진수됐습니다. 

 

인터뷰)오병욱/현대중공업 부사장(당시 현대중공업 1호선 건조 담당)

"우리는 걱정했는데 회장님은 단호했습니다. 기술력을 한단계 높여서 국가에 도움도 되고"

 

 스탠덥)
 현대중공업이 수주량과 선박 건조량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한 것이 지난 1983년.

 미포만 허허벌판에 조선소를 세운지 꼭 10년만입니다.>

 

 자동차에서도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미국 포드사와 협력해 조립 자동차를 생산했지만 이에만족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국산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인터뷰)박병재/전 현대자동차 부회장

"유학 다녀온 학자들은 모두가 안 될 것이다고 했죠.현대그룹까지 망하게 할 것이라고 말렸고"

 

 포드사와 결별 3년만인 75년 12월 국산 1호 자동차 포니를 만들었고 수출 첫해 16만대를 파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정 회장은 70년 6월에는 세계 고속도로 역사상 가장 짧은기간인 12년만에 경부고속도로 공사를 완공하기로 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단기간 독창적으로 일군 신화들은 이후 한국 경제 성장의 든든한 원동력이 됐습니다.
 유비씨 뉴스 이영남입니다.(2009년 3월 16일 ubc 울산방송 프라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