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직업인

정주영 기획<2>수많은 성공신화

이영남기자 2009. 3. 20. 09:46

 앵커멘트)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재조명해보는 순서.

 정 회장은 86세를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현장을 부지런히 누비며 수많은 업적과 일화를 남겼습니다.

 이영남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정주영 회장은 농사일을 거들며 성실함을 익혔습니다.

 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할 때는 배달을 잘하기위해 사흘밤동안 자전거 타기를 익혔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인터뷰)정주영 회장

"과거나 현재나 아침 5시 전에 일어납니다.일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날 할 일에 너무 기대를 걸고 기뻐서."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 수리 공장 경영 경험을 살려 60년대말 울산 염포만에 자동차공장을 세웁니다. 
 기술 수준이 낮아 포드의 부품으로 조립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고작.

 미쓰비시의 기술 협조 계약을 성사시켜 독자 모델인 포니 개발에 성공하고 기아차와 더불어 세계 5대 메이커가 되는 터전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뷰)오사무 마츠코/미쓰비시 자동차 사장

"정 회장은 제로에서 상당히 큰 것을 단기간 달성했다는 점에서 좀처럼 예가 없는 독특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조선소 준공도 어렵게 성공해 도약하려던 차인 73년부터 1,2차 오일 쇼크로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합니다. 
 정 회장은 오일달러를 벌어 들이기위해 주베일 항만 공사의 낙찰을 따냈지만 문제는 심해에서 이뤄지는 난공사.

 결국 필요한 시설물을 울산에서 조립한 뒤 선박으로 사우디로 옮기도록 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인서트)김용재/ 전 현대알루미늄 사장

"지구 반 바퀴 이상을 돌아 설비를 운송해 조립한다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유조선으로 물길을 막아 바다를 메운 서산 간척지 공사와 88년 서울올림픽 유치까지 정주영 회장이 나서면 안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인서트)정주영/현대그룹 창업자
"자기가 열심히 일 하기 때문에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에 차 있어 불행하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습니다."

 

타계 직전인 98년에는 정 회장은 소 떼를 끌고 판문점을 넘어가 남북 교류의 큰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유비씨 뉴스 이영남입니다.(2009년 3월 17일 ubc 울산방송 프라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