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본 이모는...
대학생 3학년인 조카가 지난해 여름방학때 두명의 기자를 만났다.
한명은 노근리 사건 보도로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최상훈 기자이고,
다른 한명은 집안에서는 민폐의 달인인 그녀의 이모이다. 조카의 글을 원문 그대로 실었다.
직업에 대한 회의가 드는 날...당시 대학생 2학년이던 조카가 쓴 글에서 마음을 다잡는다. 아진아 고맙다. -이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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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만난 뒤> (서아진. 2009년 여름 상명대학교 2학년)
가장 논리정연하게 세상을 보도하는 당당한 전문 직업인인 기자는, 그 중에서도 방송 기자는 사실 나와 참 가까운 거리에 있다. 사실 전문 기자로서 이모의 모습을 보게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 전엔 고루한 사회의 틀을 깨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진취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온 가족이 모인 명절날에도 어김없이 당직이 있는 이모, 무수한 해외 출장이나 야근이 잦은 이모로 끊임없이 엄마나 다른 이모들에게 비판받는 이모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만난 이모는 스트라이프 정장을 위아래로 흰 셔츠와 함께 맵시 있게 차려입은 드라마 속의 커리어우먼이었다. 자신감 있게 상대방에게 인터뷰 일정을 짜고 인터뷰에 들어가선 그 인터뷰를 막힘없이 이끌었고, 일정이 끝난 뒤엔 내가 다 뿌듯하고 먹먹해질 정도로 그 일에 책임을 다하고 참 즐기는 것이 보였다.
어떤 기자와의 저녁식사. 나에겐 어려운 자리가 아닐까,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친목이 있어 그냥 가볍게 얘기 나누고 식사하는 자리다.'는 이모의 부름에 깊은 생각 없이 긍정의 뜻을 내보인 나한테, 이모는 별안간 과제를 내주었다.
그 대상이 '한국 기자로는 최초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최상훈' 기자이며,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건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이러저러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로 가볍게 무장해간 내 앞엔 또 다시 내가 생각했던 일반적인 신문 기자와 조금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기자가 사람 냄새 나는 직업일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분석해 전달하는 그들은 사실 어떠한 감성에 기대거나 호소를 요하거나 하지는 않으므로 냉철하다고 생각했으며, 이와 같은 자질은 또한 기자의 필요조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건 안 될 말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러나 저녁식사를 거쳐 마감하는 커피 가게의 문을 열고 나오는 사이, 한 방송 기자와 한 신문 기자가 그들의 직업과 그들의 삶을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 둘이라는 인간에 매료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 나타난 공통분모에 큰 매력을 느꼈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직업이 결국 사람, 즉 삶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거듭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둘의 이야기는 주제를 막론하고 넓고 깊게 이어졌는데 그러한 모든 일련의 과정이 곧 자신의 전문 직업과 관련된 일이기도 한 점은 기자들에게만 해당되는 특혜 같았다.
그들이 한 말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호기심'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몸담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기자의 일을 하며 그들의 애정 어린 호기심을 충족하는 일을 재미있어했다. 어찌 보면 자신의 재미를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좇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란 생각도 들었다. 인터뷰 대상과 사건을 존중하는 만큼 그들 자신을 존중한다. 여타 언론의 힘이라는 것도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기자는 주어진 세상을 자신이 가진 끝없는 호기심으로 전략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사람이다. 호기심은 동기의, 과정의 원동력이 될 수 있고 끝내는 기자의 책무와 사명감을 제시하게도 한다. 굉장히 권위 있고 딱딱할 것 같았던 한국 기자 최초의 퓰리처 상 수상자는, 휴가 겸 출장을 가서도 어느 장소에서 안테나 같은 것이 마구 모아져 있어 그냥 지나치지 못해 알고 보니 안테나를 모으는 이상한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 기삿거리가 될 거 같아 완성된 기사가 과정부터 끝까지 참 재미있었다며 뿌듯해하는 사람이었다.
(여담...... 한 꺼풀 벗기면 어떤 직업이든 참 소중하고, 어떤 직업을 가지든 그건 그 사람의 성향과 상황 차이지, 무엇이 좋고 나쁘고 힘이 있고 없고에 따라 순위와 서열이 나누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중, 고등학생이 그 서열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가? 어떤 직업이든 노력이 필요치 않은 직업이 없으며, 직업세계에 발을 디딘 후 인고의 기간을 지니지 않는 직업이 없다. 대부분의 직업은 비추어지는 환상과는 멀어보였고, 어떤 삶을 살든 참 열심히 삶과 더불어 이를 충분히 즐기는 사람이 그 직업 세계에서도 가장 행복해 보였다. 다만 다양할 뿐이지 옳고 그른 것이 없다. 기자는 (어쩌다보면 권력의 중심이 되는 기회가 있어 그런 것인지) 대부분 성적 높고 똑 소리 나는 아이들의 폼 나는 전유물인양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물론 그런 사람이 정말 기자가 되고 싶다면 물론 그렇게 나가는 것이 옳고. 기자는 '되고 싶다', '하고 싶다'의 의지가 어떠한 직업군 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사람 같았다.
방송 기자와 신문 기자는 차이가 꽤 있지만 공통된 부분도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여튼 기자의 자질은 높은 성적보다는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성숙하게 피력할 수 있는 사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