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은 기자의 날
방송의 날, 신문의 날 공식적인 언론인을 위한 여러가지 날이 있지만, 나는 오늘을 '기자의 날'로 선포하고 싶다.
'노근리 민간인 학살 보도' 10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보도는 AP 통신이라는 외국 언론사가 한 것이지만, 기자가 할 일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준다.
"세상에는 언론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힘은 없지만 이같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일이다."
이 기사를 보도한 최상훈 기자의 말이다.
잊혀지거나 묻혀졌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조명해 후대의 역사가들에게 알려주는 '하루살이 역사가'가 바로 기자이다.
1999년 9월 29일 AP 통신은 장문의 기사를 전세계에 타전했다.
1950년 7월 말, 한국의 한 철도 굴다리와 그 주변에서 400명에 달하는 피난민들이 미군의 공격으로 죽었다는 내용이다. 피해자 가족인 한국 생존자들과 가해자격인 12명의 미 퇴역군인들의 인터뷰는 반세기전 일어난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비밀 해제된 군사 문건을 인용해 미 지휘관들이 민간인으로 위장한 적군의 침투 위험을 감수하느니 전선으로 접근하는 피난민을 사살해버리라는 명령을 하달한 사실도 처음 공개됐다.
한국의 노근리라는 한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용서받지 못할 행위가 세계 각지의 신문 머릿기사를 통해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AP 통신 소속 기자 3명은 다음해인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AP 통신이 속보성 특종이 아니라 장기간 심층 취재해 퓰리처상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반세기동안 ‘금기시된 이야기’가 보도된 중심에는 3년동안 취재에 매달렸던 서울지국의 최상훈 기자가 있었다. 최상훈 기자는 한국인 국적으로 처음 퓰리처상을 받은 기자이다.
“AP 통신은 통신사여서 추적 보도를 잘 하지 않죠. 추적 보도에 시간과 인력을 잘 투입하지 않아요. 노근리 보도는 AP 통신이 유일하게 장기적으로 심층 취재했고 퓰리처상도 받게 된 기사죠. 추적 보도를 잘 하지 않고 추적보도를 하는 문화가 없는 통신사에서 추적보도를 한다는 것이 어려웠어요.우선 상당히 오랫동안 취재를 해야한다는 점이 힘들었고, 더 큰 어려움은 AP 내부에서 이 기사를 내보내야할지 말아야할지 상당히 말이 많았어요. 저는 기사만 쓰고 넘긴 게 아니라 그 기사가 나와야한다는 점을 설득시키고 싸우는 데만 1년 가까이 걸렸어요.”
최상훈 기자의 뚝심으로 1999년 9월 29일 마침내 ‘노근리의 학살’ 기사가 AP 통신을 통해 전세계로 타전됐다. 최상훈 기자는 94년부터 미국 언론사인 <AP통신> 서울지국에서 일했고, 2005년부터 <뉴욕타임스>의 국제면을 맡고 있는 자회사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한국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울산방송 이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