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직업인

고전 번역 1인자..울산대 성범중 교수

이영남기자 2010. 10. 6. 13:59

 옛 문학에도 울산의 자취는 많지만 대부분이 한자로 적혀져 일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20년 이상 한자로 씌여진 고문을 번역해 지역 문학과 문화의 정통성을 부각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울산사람 이영남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성범중 교수.

 한국 한시를 전공해 23년 째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한자로 기록된 고 문서들을 번역해 알리는 작업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성 교수가 울산과 관련된 한시를 모아 번역 정리한 책에는 묻혀있던 지역 문인들의 작품성과 시대상이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인서트)<한시속의 울산산책>이양오작 '좌병영의 위세로 인한 폐단'

"전란 때에는 식량을 도적질하더니 평시에는 백성의 마음을 뒤흔드네."

 

 그는 또 울산의 문학 전통성을 조명한 책과 한문학 속에 남아 있는 울산의 풍류를 담은 책을 출간해 각각 학술원의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성 교수에 따르면 향가인 처용가를 생성하고 박제상 부인에 대한 치술령 설화가 천년 이상 구전된 울산은 문학적 토양이 비옥합니다.

 

 인서트)성범중/울산대 교수
 "100년 이전까지 치술령 설화가 전승되고 그것을 노래로 불렀던 자료도 있고 조선조에 들어오면 선비 문화가 있죠."

 문인들이 몰려와 시를 짓던 반구대 집청정과 태화루가 있고, 통신사가 지나는 길목으로 중앙과 소통하면서 울산에서는 뛰어난 문인들을 배출했다는 설명입니다.

 "7월16은 소동파가 적벽부를 지으면서 뱃놀이했던 날이기 때문에 7월 16일되면 태화강에서도 많은 이들이 뱃놀이를 하고"

 성 교수는 안식년인 올 봄에도 쉬지 않고 과거 울산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18세기 울산의 지리와 역사를 기록한 책인 '학성지'를 완역한 것입니다.

 

 "대학이 울산에 소재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 지역의 문화나 다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성 교수는 앞서 다른대학 교수 2명과 함께 고려말 유학자 이색의 시문집 6천수,12권을 완역하기도 했는데 10년이 걸린 대장정에 학계는 놀라워했습니다. 유비씨 뉴스 이영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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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 성범중 교수 인터뷰

 

질문) 울산이 문학적, 문화적 전통이 있는 도시라고 말씀하시는데 이유는?

-울산이 옛날부터 정몽주가 고려말에 언양에 유배를 왔죠. 그가 주변 경관에 대해 시를 읖고 반구대에 올라가서 멀리 당시 수도가 개성이었으니 개성 쪽으로 보면서 그리워하고 우국충정을 그리워한 시도 남았거든요.

반구서원은 정몽주 선생의 업적 기리고 해제 한강 선생 세분을 기리기 위한 정신이 있고 지금도 풍광은 전국 어디를 내놔도 빠지지 않는 풍광이 있죠.

울산은 산과 바다 들판이 어울어진 곳이 돼 옛날 선비들이 자연을 즐기는 괜찮는 고장입니다.다만 일본 왜구의 방어가 부각돼 문화 불모지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죠. 최근 통신사 이예선생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일본가는 통신사가 가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곳, 중앙 문화와 지역 문화가 교통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울산입니다. 통신사들이 지나가다보면 울산 부사가 맞을 것이고 태화루는 당시 없어졌지만 풍류는 남았죠.

 

질문) 문학 속에서 울산은?

향가 처용가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누구나 아는 것인데 '처용'의 정체가 뭐냐, 처용 설화와 관련된 다양한 전승이 있습니다. 또 치술령 쪽도 설화가 있어요.  치술령은 박제상이 눌지왕의 두 아우를 구하기 위해 고구려도 갔다오고 일본에 가서는 돌려보내고 자신은 붙잡혀 불에 타 죽었다는 내용인데 그것으로 끝났다면 문학적 전통이 아니죠. 후일담이 대단하고 이것을 문학으로 봐야합니다. 즉 '남은 부인이 세 딸들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 배를 짰고,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몸은 돌이 되고 혼은 새가 됐다. 그 새가 비조마을 옆에 고인돌이 있는데 비조암은 날아갔던 새가 잠시 앉았다고 해서 나왔고, 그 새가 치술령 맞은편 굴속에 숨었다고 나온 것이 은월암이고 바위굴이다'는 것인데 지금은 암자로 변했죠. 치술령 꼭대기 국수봉과 은월암, 박제상 가족들이 살았다는 비조암 설화는 삼각형을 이루고 최근 100년 까지도 구전되는 설화가 전승되고 노래로 불리는 자료가 있습니다. 또 조선조에 들어오면 선비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이 없어 안 찾았기 때문에 없다고 하는데 문학적 전통이 있다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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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한시를 전공하고 울산지역 한문학을 번역하게 된 이유는?

-제 전공은 한문학 중 한국 한시 전공입니다. 전공하게 된 계기는 고전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계기가 있었어요. 대학원 다닐 때 정조임금이 설립한 규장각에서 해제집 자료를 편집하게 됐는데 규장각 도서를 접하면서 우리 문화의 보고라고 느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문집 역사에 대한 책, 한국에서 나온 것만 14만 권이 있습니다. 70년대 중반쯤만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죠. 한글로 된 문학 문화만 전부인양 인식되지만 사실 한글 문화는 빙산의 일각이죠. 한문학을 알아야겠다 싶어 석박사를 하게 됐다. 한문학이라는 영역이 그렇습니다.  우리문학을 사용 언어만 갖고 이야기하면 말로 하면 구비문학, 문자는 기록문학인데, 한글문학은 고전문학 현대문학 등으로 나누는데 한문학은 미분화된 한문학으로만 인식돼 있죠. 한문학도 시, 소설 등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 전공은 한국 한문학 중 한시 전공입니다. 또 대학 교수로 울산에서 근무하니까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됐죠. 교수의 3가지 활동방향은 연구와 강의,봉사입니다. 즉 제가 일하는 대학이 울산 소재이니 당연히 그 지역 문화와 다른 문제에 관심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한국이라는 큰 차원에서 한문학도 다룰 뿐 아니라 이 지역 근무하는 교수로서 이 지역 문화를 다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다른 교수 2명과 함께 10년이 걸려 목은 이색의 시집을 완역하셨는데...

-목은 이색은 고려 말기 정신사 사상가에서 그를 거치지 않고는 건드리기 어려운 대단한 분입니다. 그분이 쓴 시는 6천수가 넘습니다. 그분의 시는 하나하나가 사상과 인생 경륜과 책이 들어가 있어 한편한편이 쉽게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운필교수가 목은 시를 가지고 박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역을 해보자, 초반에는 그렇게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진퇴양난, 출발한 것을 마무리 짓지 않고는 안되는 거죠.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약속했었고, 합숙을 40회 이상 하면서 요즘와서 보면 뿌듯하죠. 한수에 4-5번 읽으면 시를 2만수 이상 읽었습니다. 목은 선생의 학문사상을 부각하고 우리 자신도 공부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죠.

 

질문)<한시 속의 울산산책>과 <울산지방의 문학전통과 작품세계> 등의 책을 펴냈는데 울산 출신 문학 작품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자면?

병영과 울산과 관련된 시를 보면 반구대 집청정이니 태화루이니 선바위 이런 것들을 읊으면서도 자연물이 많을때는 어떤 지역 색을 찾기힘들어요. 기억에 남은 분이 중인 출신으로서 남목 목장 말 관리하는 관목관 홍새태씨가 있는데 이분이 2년남짓 근무하는 사이 울산 주변에 사는 서민들의 삶, 민속, 경관을 중인 계층의 시각, 양반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300년 전에 울산 풍습 서민의 삶, 어민들의 삶 묘사를 많이 하셨죠. 또 울산 출신 선비로는 반계 이양호가 있는데 석계 출신으로 울산서 자라 울산서 살면서 지역 출신 선비로 향토애를 바탕으로 한 시를 많이 썼습니다. 당시의 사회 문제를 조목조목 짚으면서 감회 17수라는 시가 있습니다. 울산지역 살았던 선비들의 생각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살펴볼 수 있죠.  한시속의 울산산책 좌병영 시를 보면 “병영의 위세를 부리니 마을의 후미진 곳에는 울음소리 낭자하네”(중략)@@@ 울산방송 이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