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은씨는 왜 외교관이 됐을까?
현재 외교부의 OECD 참사관으로 근무중인 김효은씨는 왜 외교관이 됐을까?
그녀는 신문기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중고등학교 때 막연히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2O년가량 국제부 취재를 하셨던 아버지는 딸에게 국제사회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한미정상회담이나 한일 정상회담을 취재하고 뒷 이야기나 1980년대 말 동유럽 상황 등이었다. 당시만해도 일반인의 해외 여행이 쉽지 않던 시절 그녀는 신문사 도쿄 특파원으로 계셨던 아버지 덕분에 고등학교 때 일본을 여행해보며 세계 속 우리나라의 위치에 대해 짚어볼 기회를 가졌다. 아버지를 통해 전해들은 외교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외교관이 멋있을 것 같았다고 생각했다.
외교관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1986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했다. 돌이켜보면 절실하게 원했다기 보다는 막연하게 꿈꾸었다는 설명이다. 대학 졸업 전 외무고시에 합격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입학했는데, 막상 대학 1학년 때 외무고시에 합격한 한 선배의 강연회에 참석하고는 한발 물러섰다. 우선 외무고시는 일년에 20명밖에 뽑지 않는데 외교관이 되겠다고 강연회장을 가득 메운 수백명의 학생들을 보고 기가 질렸다. 외무고시 시험이 고3으로 돌아간 것보다 더욱 어렵다는 선배의 말에 완전 자신감 상실 상태가 됐다. 대학에 들어왔으니 우선 좀 놀고, 여행도 많이 하고, 다른 사회활동 경험도 한 뒤 기자나 PD나 교수가 되는 등 다양한 진로를 모색하는 것도 괜찮다고 자신을 정당화시켰다.
3년 동안 진로 결정을 미루다 대학 4학년이 돼서야 뒤늦게 외무고시를 보기로 최종 목표를 잡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눈높이를 낮춰도 여대생이 취업할 곳이 많지 않았고, 일반 기업체도 나이 제한이 있어 쉬운 것은 없었다.
1990년 2월, 대학 졸업식장에서 그녀는 졸업장만 받았다. 이미 취업한 친구들 사이에서 백수가 된 자신이 두드러졌다. 그녀는 하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할지 정하지 않았을 때 불안하지 일단 목표를 확실히 정해놓고나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해진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2년반동안 다시 고3이 된 것처럼 한눈 팔지 않고 공부했다. 할아버지 생신잔치도 가지 않고 외출을 해도 화장도 하지 않았다.
-<너의 꿈에는 한계가 없다>(이영남 씀, 민음인 펴냄,) 원고의 일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