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집단이주, 기록이 없다..유물보다 못해?

이영남기자 2015. 4. 10. 09:57

 앵커멘트)

울산에서는 공단 건설 등으로 지난 반세기, 무려 5만명이 넘는 이들이 고향을 등졌는데요.

 실향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나 체계적인 이주정책 수립 등을 위해서라도 기록을 남겨야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탐사취재반, 이영남 기자가 그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빽빽이 들어선 울산혁신도시.
 
 8년 전만 해도 농촌이던  원유곡 마을이 있던 곳입니다.

 주민 100여 가구는 밭농사를 생업으로 3백 년째 대대로 살아왔지만 2007년 삶의 터전을 떠나야했습니다.
  (CG-IN)
 혁신도시 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을들 가운데 3곳(원유곡, 원약, 장현)만 이주 전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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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소문 끝에 기록물이 있다고 찾아간 곳은 안동대학교.
 
 박물관은 울산혁신도시 착공 직전인 2007년, 원유곡 등 3개 마을 200여 가구를 탐방해
의식주와 생업, 의례, 세시풍속을 기록, 녹취하고 사진을 담은 보고서를 펴냈습니다.

 안동댐 수몰 당시 기록이 없던 문제를 알고 있던 박물관장이 울산혁신도시 지표조사 보고회에서 문화재청에
제안하면서 이뤄졌습니다.  

 

 인터뷰)배영동/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조사단장)

"마을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기록조차 남기지 않고 끝내버리는 것은 역사인식이 부족한 것이다고  해 이 사람들의 삶과 역사, 문화에 관한 기록조사보고서를 남기고.."
 
 <<스탠덥: 일년 만에 자료를 펴낸 연구자들은 원 주민들의 삶과 문화, 도시의 역사성을 알리기 위해 울산의 박물관
등에서 상설 전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자료는 8년째 잊혀진 기록물로만 남았습니다.>>
 
 LH공사도 문화재청의 지시로 울산의 3개 마을 조사는 마지못해 의뢰했지만, 기록물의 존재 여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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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주군 두동면 대곡댐 인근 마을 주민들도 고향은 잃었지만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5개 마을 170가구는 1999년 대곡댐이 착공되면서 이주당하고 고향은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관련 박물관이 건립되면서 실향민들은 옛 고향과 관련된 동영상과 사진, 유물을 보고 실향의 아픔을 달래고 있습니다.
 
 인터뷰)김영곤(64세)/ 두동면 상삼정 출신 실향민 "현재는 물에 잠겨 있는 우리 마을이지만, 우리가 대곡박물관에 가면 영상에 저희들이나타난 것이 상세히 나와 상당히 도움이 되고.."
 
 청동기 무덤이 무더기로 발굴된 덕분에 이례적으로 모범사례가 됐을 뿐, 도시 개발로 강제 이주된 백여개 마을은 기록물
보존은 남의 이야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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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십 년째 한을 삭이다 실향민 스스로 뿌리 찾기에 나서기도 합니다.   

 80년대 산업단지로 인해 집단이주된 이 50대는 20년 만에 고향 성암동 주변 해안마을의 이주 역사를 조사해 자료집으로
펴냈습니다.
 우물 등 옛날의 흔적을 찾아 표지판도 설치했습니다.

 

 인터뷰)김진곤(53세)/ 남구 성암동 출신 실향민 "이주민들이 단체로 이주를 많이해 여러 가지 보존 기록이 안된 상황에서 누군가는.."
 
 산업단지와 댐 건설, 원전 등으로 강제 이주된 사람은 5만 명에 이르지만, 울산시나 울산박물관 차원의 연구와
기록물 보존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한삼건/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울산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의미도 되고
개인적으로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부분,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달해 치유가 되지 않느냐.."

 

 지난 반세기 앞만 보며 숨가쁘게 달려온 울산.

 이런 발전의 뒤안길로 밀려난 집단이주 또한 엄연한 현대사의 궤적 만큼, 체계적인 기록과 활용방안 마련은 더 늦출 수
없는 과젭니다.

 탐사취재반 이영남입니다.(2015.4.8. UBC 프라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