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울산시장'..권상일 부사(스토리)
앵커멘트)
지금의 시장격인 조선시대 울산 부사 중 가장 존경받은 인물로 권상일 부사가 꼽힙니다.
울산 최초의 역사서인 읍지를 발간하고, 서원을 후원해 문풍을 장려했습니다.
스토리텔링 뉴스 이영남 기잡니다.
리포트)
1749년 울산 최초의 읍지로 편찬된 '학성지'.
고을의 연혁과 지리, 교통, 인물 등을 총망라한 지리역사서로, 초고본 중 한부가 남아 2006년 경북의
유형 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학성지 편찬을 시작해 서문을 쓰고 감수한 인물은 권상일 울산도호부사.
울산 부사직을 떠날 때도 초고본을 들고가 고향에서 수정해 11년 만에 완성했습니다.
(cg1 인서트)학성지 서문
"동남쪽이 모두 큰 바다이고 좌우에 둘러싼 것이 명산과 운수이다. 풍기가 매우 뛰어나므로 뛰어난 유학자를 태어나게 하고"
학성지는 효자와 임진왜란 공신 등 인물과 민간 풍속인 마두희 등도 꼼꼼히 기록해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성범중/울산대학교 교수 (학성지 번역)
"어디든지 있는 읍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을 가장 안타깝게 여겨서 울산의 명망있는 선비 두세 분들에게 초안을 만들게 해서 최초로 만들어낸 것이 학성지라는 울산 최초의 읍지입니다."
권 부사는 성균관 전적과 도산서원 원장 등을 거쳐 57세에 울산 부사로 온 뒤 3년8개월 동안 재직했습니다.
<<스탠덥: 권상일 부사는 퇴계 이황의 학통을잇는 남인의 대표학자로, 울산의 교육과
문풍의 기반을 닦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CG2
"울산부는 유독 과거 합격자가 거의 없다. 재주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뜻을 새기며 독실하게 공부하지 않는 까닭이다.(권상일 '울산의 선비들에게 알리는 글' 중)
사재를 보태, 구강서원의 기숙사격인 동재와 서재를 건립하고, 유생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신형석/ 대곡박물관장
"당시 문과 급제자가 울산에는 없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굉장히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된다는 교육진흥 노력 때문에 50년 뒤에 결실이 맺어졌습니다. 정조 때 이근오라는 분이 문과 급제를 하게 됩니다."
(cg3)
뛰어난 문인이었기에 유서깊은 명소는 지나치지 않고 수많은 시로 남겼습니다.
(cg4)
반구대의 아름다움을 이상향인 도화원에 비유한 작품 등 명소들은 명문을 통해 중앙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유비씨 뉴스 이영남입니다.(2015.10.25 ubc 프라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