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구직자들, 사회에서 맹활약 ..<20년 전 뉴스 그 후 3>
3편.<20년 전 뉴스 그 후> IMF 구직자들, 사회에서 맹활약 (2017.8. 29. 방송)
(앵커멘트)
ubc 창사 20주년 연속기획, 오늘은 당시 구직자 편입니다.
외환위기 당시 청년 고시 준비생과 환경미화원 시험 지원자를 이영남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1997년 겨울, 단칸방에서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29살 이민호 씨.
(수퍼: 1997년 12월, 울산 학산동)
이미 두 차례 낙방한 상태, 마지막이라며 배수진을 쳤습니다.
인터뷰)이민호/ 사법시험 준비생 (1997년 12월 인터뷰)
"돌아가신 아버님이 제가 법관이 되기를 원했고 저 스스로도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점포도 없이 시장통에서 생선을 파는 홀어머니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 책을 파고들었습니다.
(CG 1997->2017)
20년 만에 그를 만난 곳은 울산지방법원.
인터뷰)이민호/ 변호사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얼떨떨했거든요. 그런데 연수원에 들어가 다른 합격생 봤을 때 실감나더라고요."
어머니 부양 때문에 이동이 많은 검사직은 포기하고, 변호사의 길을 걸었지만,
인터뷰)이민호/ 변호사
"어머니가 시장에서 생선장수하는 것을 벗어나게 하는 길은 고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의 꿈은 법관이었지만 법관이 되지 못하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나름 양심적으로 하려고 노력해왔거든요."
공적인 업무에 기여하고자 법원의 개인파산관재인으로도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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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들이 20kg짜리 모래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달리는 이곳은 환경미화원 공채 시험장.
(수퍼: 2003년 1월, 울산 태화강둔치)
몰려든 지원자들 가운데는 외환위기 이후 5년째 실업자였던 40대의 한 가장도 있었습니다.
14년 뒤 울산 남구의 한 도로.
인서트)이원휴/ 남구청 환경미화원 "울산 남구청의 (환경미화원) 공채 1기 이원휴입니다."
2003년 채용된 이원휴 씨는 쓰레기 수거를 시작으로 요즘은 '노면 진공 청소차'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때 실직을 한 뒤 다시 잡은 정규직, 공공에 봉사하는 일이어서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인터뷰)이원휴/ 남구청 환경 미화원 "중장비 회사에서 10년 일하다 그만두고 나오니 할 일이 없는 거예요. 시험을 쳤는데 합격해 너무 보람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지질한 백수 시절 절박함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노라고, 20년 더 젊은 자신과 대화합니다.
ubc 뉴스 이영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