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 신호범 미국 워싱턴주상원의회 부의장실인데.
우리나라 시의원들의 집무실보다 좁은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고맙게도 직접 사인한 자서전을 선물로 주셨다. 이 책을 출간해 번 돈을 모아 한인 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시고 계신다는 말에 송구함이 커졌다.
미국의 여성과 소수민족의 정계 진출- 워싱턴주 사례를 중심으로 -
이영남
민주주의의 대표국가인 미국은 여성의 참정권이 1920년 시작됐지만 여성은 아직 정치 분야에서 아직 완전한 주류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통령제를 시작했지만 아직 여성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고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도 배출하지 못했다. 미국 하원의 여성의원 비율은 16.8%로 한국의 국회 여성 의원 비율 14.7%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낮은 비율이다.(2011년 11월 국제의회연맹 IPU 자료)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양당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사회를 여성이 맡은 것이 1992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기사화되는 것을 보면 미국 역시 여성의 정계 진출은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느끼게 한다.
이처럼 미국 정치계도 남녀 차별이 있고 유리천장이 높지만 한국과 다른 점은 성 차별보다는 인종 차별 문제가 먼저 부각된다는 점이다. 투표 참여권만 놓고 보면 여성이 유색인종 보다 앞선다. 미국에서 여성은 1920년에 참정권을 가졌지만 대다수 주에서 흑인이 참정권을 가진 것은 1960년대이다. 하지만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흑인인 오마바가 여성인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자 “미국도 남녀 차별이 흑백 차별보다 뿌리 깊다.”는 말이 미국의 여성계에서 나왔다. 즉 미국에서 ‘남녀 차별이 없다.’ 라기 보다는 ‘인종 차별 문제가 더욱 부각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실제 최근 10여년 사이 미국 정치계는 여성의 정치 참여와 유색인종의 정치 참여가 동시에 화두가 되는 것 같다. 후자의 경우 인종 차별을 어떻게 극복할지와 히스패닉계와 흑인 등 소수민족의 지지를 어떻게 모을지가 관심사가 됐다.
따라서 여성의 정치 참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미국 여성들의 정계 진출과 더불어 소수민족 특히 한인들의 정계 진출 사례를 보는 것이 우리 여성들에게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연수팀이 방문한 미국 워싱턴주를 중심으로 여성의 정치 참여와 소수민족인 한인들이 어떻게 정계에 진출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우선 워싱턴주의회의 여성 비율부터 보면 2012년 주의회의 상원의원은 49명 중 23명이 여성이고, 하원의원은 98명 중 7명이 여성이며, 주지사도 여성이다. 주의회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는 놀라울 정도로 높은 편이다. 현지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가 많기 때문에 남녀 차별 문제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 비율은 높지 않지만 최소한 주의회에서 여성의 정치 진출은 높다고 했다. 이는 울산의 경우도 광역-기초의회에서 여성의 진출이 국회의원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많은 것처럼 생활과 밀착된 정치가 중요한 주의회에서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한인 정치인 배출은 워싱턴주에서 현재까지 두명만 있을 정도로 소수이다. 워싱턴 주의회 부의장인 신호범 상원의원과 신디류(55세 한국명 김신희) 하원의원이 있다. 신호범 상원의원은 6.25전쟁 직후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하던 중 18세에 미군의 가정에 입양돼 대학 등을 졸업하고 교수로 활동하다 정계에 진출한 4선 의원이다. 아시아계로도 처음 미국 주의회 부의장이 됐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신디류 하원의원은 2005년 주 시의회에 당선되고 2008년 시의원 가운데 선출하는 시장(쇼어라인시)에도 당선됐다. 한인 여성으로는 처음 미국에서 시장이 됐고 2010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당선돼 첫 한인 여성 하원의원이 됐다.
두 명 모두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와 보험업 등에서 활동하던 중 소수민족 중 소수인 한인들의 지지를 받아 출마했다. 이들은 모두 “소수민족의 권익 보호와 유색인종 차별 철폐”를 내걸어 당선됐다.
워싱턴주에서 소수민족의 비율은 20%이지만, 이들의 정계 진출의 걸림돌은 유색인종의 정치 관심도가 낮다는 점이다. 한인들도 미국사회에서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정계 진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미국 사회에서 이민 1세대와 1.5세대 한인 엘리트들은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직이나 당장 돈을 벌수 있는 사업에만 관심이 많고 정치 분야 진출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다. 소수민족들은 아예 투표 자체에도 무관심이다. 워싱턴주의 소수민족의 비율은 20%이지만 유색인종의 투표율은 이보다 낮아 실제 투표율의 95% 이상은 백인 표로 결정될 정도이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워싱턴주에서 한인 정치인을 두명 배출한 것은 그나마 지역적 특수성과 한인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워싱턴주에서 한인의 이민 역사는 40년이 되는데 이들은 정계 진출의 필요성을 느끼고 함께 노력하는 점이 눈에 띤다. 신호범 상원의원이나 신디류 하원의원은 모두 한인회의 지지를 시작으로 소수민족을 공략하고 진보 성향의 백인들의 표를 모아 당선이 됐다. 한인회는 정치인 후원회를 만들어 현직 정치인을 금전적, 정치적으로 지원하는 것 외에도 차세대 정치지도자 육성을 위해 장학회도 설립했다. 한인회가 만든 ‘한미 차세대 지도자 육성 교육 장학재단’은 정계 진출을 준비하거나 정치 분야를 공부하는 한인 3명에게 1인당 연간 만달러씩의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소수민족인 한인들이 현재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세대 지도자를 육성한다는 면에서 의미있는 사업으로 여겨진다.
둘째 한인들이 자체 역량을 키우고 소수민족 전체의 대변자 역할을 하며 위상을 높인 것도 도움이 됐다. 대표적인 단체가 대한부인회이다. 40여년전 10여명의 한국계 여성 이민자로 출발한 이 단체는 현재는 워싱턴주에 거주하는 9만여명의 한인 뿐 아니라 45개국 출신의 15만명의 소수민족들을 돕는 이른바 다문화 봉사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부인회는 1979년 비영리단체로 공식 인가받은 뒤 연간 2천만 달러 이상의 예산을 편성해 노인 급식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공급 등의 사업을 하는데 눈여겨볼 점은 수혜 대상이 한인 뿐 아니라 필리핀이나 사모아계 출신 등 다양한 소수민족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여성의 진출이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19대 국회에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비례대표를 포함해도 15.7%이다. 이는 국제의원연맹(IPU) 회원국의 의회 내 여성 의원 비율은 19.1%보다 낮고 회원국 188개국 가운데 79위이다. 울산의 경우 시의회에서 여성의 참여는 증가하고 있지만 지역구에서 여성 국회의원을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다양한 계층과 소통하는 정치, 생활을 챙기는 민생 정치가 중시되면서 지역구에서 여성 국회의원 배출도 시간 문제로 보이고 여성의 정치 참여 비율도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울산은 한국 내에서도 여성의 사회 참여 비율이 현격하게 낮고, 관리직이나 리더 그룹으로 한정하면 여성의 비율은 더욱 낮아진다. 진정한 여성의 정치 참여는 사회 여러 분야에서 역량 있는 여성들이 진출하고 현장과 서로 소통할 때 가능하며 양성 평등과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와 역량 강화도 필요해 보인다.
미국 사회에서 소수계인 한인들이 미래를 보고 준비하듯이 차세대 여성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한 정책과 풍토를 만들어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2012년 9월 울산여성포럼 보고서, UBC이영남)
'너의 꿈에는 한계가 없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학생이 만난 2명의 기자 (0) | 2012.04.10 |
---|---|
진로를 찾는 이들을 위한 조언 (0) | 2012.03.08 |
김효은씨는 왜 외교관이 됐을까? (0) | 2011.11.11 |
박정훈 PD의 아침주문 (0) | 2011.07.07 |
나의 꿈에도 한계는 없다..책에는 없는 이야기4 (0) | 2011.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