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직업인

세상을 바꾸는 만화가 박재동 화백

이영남기자 2008. 12. 10. 02:00

세상을 바꾸는 만화가..박재동 2007년 1월 4일 ubc 프라임뉴스

(앵커멘트)
 80년대 신문 만화 한 컷으로 독재 정권과 싸운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이 있습니다.

 울산 출신인 박 화백을 이영남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인터뷰)박재동/시사만화가
 "주제를 정확하게 전달하면서도 재미나게 전달해야하고... 그림으로 된 재미난 사설이라고 보면 됩니다.재미나게 하는 부분이
굉장히 어려워요"

 

 울주군 범서읍 서사리에서 태어난 박재동 화백.

 가난한 만화가게 아들은 87년부터 8년동안 연재한 '한겨레 그림판'으로 시사 만화가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군사정권 시대,권력에대한 촌철살인의 풍자를 담은 한 컷 만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축이었습니다.
 
 지난 96년부터는 한국예술종합 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에니메이션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만화는 어떻게 시작했나?>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님이 몸이 안 좋아서 부산에 계시다 가끔씩 고향에 오셨는데 한번은 생전 처음 보는 책을 사오셨어요. 이순신 장군,지성이 탐정,순정 만화 등 만화책인데 처음 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인터뷰)< 왜 시사만화 분야를 개척했나?>

"그 당시에는 만화가가 되겠다는 것보다 만화를 통해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해야겠다는 의미에서 제가 만화를 그렸습니다.중요한 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지루하면 안좋다는 거죠. 통렬하게 풍자를 하되 좀 웃기기도 하고 그런 재미를 많이 주려고 노력한 편이죠"

 

인터뷰) <고향인 울주군 서사에대한 추억?>
 "어렸을 때 서사국민학교 근처 모래골에서 자랐던 그 힘,그때의 사람들과 자연이 준 그 힘,그것으로 사는 것 같아요.그것이 기본적인 에너지가 되고 성품이 되는 것 같아요.겨울되면 스케이트 타고 봄 되면 진달래꽃 꺾어먹고"

 

인터뷰) <부모님의 교육 방식?>
 "7살인가 6살에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었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어요. 그릴 도구가 없었는데 송곳이 있었어요.그래서 송곳을
장판에 찍어 그림을 그렸어요.부모님이 들어오셔서 보시더니 잘 그렸구나 하고는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인터뷰)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자신이 참 좋아하는 일,인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그런 일을 발견해낸다면 기본적으로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 비록
힘들더라도 자기가 너무 좋아하면 이겨낼 힘이 있으니까"

 유비씨 뉴스 이영남입니다.

 

 경력: 박재동-1952년 울주군 범서읍 서사리 출생,서울대 미대 졸업, '한겨레 그림판'연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시사 만화가,저서
'만화 내 사랑' 등 @ (2007년 1월 4일 ubc울산방송 프라임뉴스 다시 보기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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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 화백은 그림만 잘그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도 잘 하셨는데 아마 생각을 많이 하고 열정이 많아서인 것 같았다.

아래는 방송되지 못한 인터뷰 원본을 싣는다.  

 

추가 Q1. 열정과 추진력이 대단하고 낙천적이어서 인생에서 어려운 적이 없어 보이는데 어려운 경험이 있으세요?

 저는 어렸을때 두가지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우선은 부산에 와서 만화가게를 했어요. 만화도 있고 떡볶이 팥빙수도 먹고 나에게는 천국이지만 만화가게가 사회로부터는 천대받잖아요. 선생님이 종례시간마다 '만화를 보지 말아라, 군것질하지 말아라' 말씀하시고 심지어 저에게 그런 내용의 포스트도 그리라고 말했어요, 우리집이 만화방하는 것을 모르고. 사회로부터 지탄받는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했어요.

다른 하나는 성적. 시골에 가면 늘 어른들이 공부 잘하나 몇 등하는데 하고 물어봤는데 그것이 굉장히 스트레스였어요. 중학교는

그런데로 들어갔는데 그림 그린다고 놀다가 실패를 해서 부산에서 고입 재수를 했는데 저에게 첫번째 좌절감 시련을 줬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경험이었어요. 부산 중,고등학교 서울대 등 이른바 일류급으로만 나갔잖아요.

성공만 하면 사람이 교만해져요. 어려움과 실패한 사람을 얕보게 되고 이해할 수 없죠. 제가 좌절하고 실패하고 실패한 친구들과 어울려보고 그러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알게 된 거죠. 실패할 수 있고 그래도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점.

 저에게 제일 중요한 친구는 그때 함께 실패해서 사귀던 친구예요. 성공한 친구는 지금 별로 안 만나져요. 그때 좌절하고 만난

친구는 지금도 자주 만나는데.

또 그때 제가 만화를 처음 한권을 그렸어요. 제가 고등학교 그냥 진학했으면 만화를 그리지 못했겠죠.
재수해서 시간이 되니까 114페이지나 되는 만화, '내가슴에도 봄은 왔습니다"(제 가슴이 얼어붙었는데 나중에 봄이 왔다는 내용)

라는 제목으로 그렸어요.

지금도 그 힘으로 제가 만화가가 된 것이기 때문에 실패했던 그 1년은 내 인생에서 너무 소중한 1년이 된 거죠,결과적으로.

 

추가 Q 2. 전문가들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은데 만화가 지망생, 혹은 예술가가 되려는 사람에게 어떤 면을 강조하세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해요. 첫째는 사랑이 많아야한다. 사람을 좋아하든 세상을 좋아하든 자신을 좋아하든, 사랑하는 마음이 많아야 어떻게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자랑스럽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열정이 생겨요. 어떤 사람을 너무 좋아하면 그 사람에게 다가가기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다 내는 거죠.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거죠. 사랑하면 에너지가 스스로 나오는 거죠. '무엇인가 애정이

깊어야한다. 사물이든 세상이든 사람이든 사랑이 많아야 창조를 할 수 있다.' 그 마음이 삭막하면 뭔가 하고 싶지도 않잖아요. 
 둘째는 연습을 해야한다.조금 배웠다고 해서 전문가인 것처럼 예술가인 것처럼 하면 빨리 바닥나고 나중에 자신의 역량이 쌓이지도
않았는데 한탕주의로 흐르고 무리가 너무 많이 가서 자신도 부담스럽고 자연스럽지 않다고.

항상 연습을 해야하는데 연습은 습관처럼 항상 해야지, 작은 연습 속에서 나중에 큰 힘이 생기는 거죠. 한꺼번에 하려면 절대 안되고 조금씩 항상 연습을 하라고 말하고 저도 연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추가 Q3.자식 교육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세요?
 저는 자식에 대해 교육을 한다는 생각은 거의 않고 있어요.자식 교육이라는 것이 가장 어렵죠.

저희 어머니도 아버님이 아프고 아이들 교육을 시키며 힘들게 사셨어요.  잠도 두세시간, 많이 자면 4시간 밖에 못자면서 떡볶이와

팥빙수도 만들어 파셨지만 그 어려운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자식 키우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아주 힘들게 걱정을 끼쳤는가 생각했는데.저도 자식을 기르다보니 제가 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육한다고 해서 되지도 않고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 잘할 것 같으면 이 세상에 공부 안하는 아이가 누가 있겠어요? 무엇을 하라고

해서 되지 않고 괜히 스트레스만 받고 서로 힘들게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죠.
저는 자식에게 강력하게 하라고 할 자신이 없어 결론적으로는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필요하다. 친구처럼 지내자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로 폼잡고 할 도리가 없으니 친구처럼 지내기로 한 거죠. 인도 마누 법전을 보면 '자식이 16살이 지나면 친구가되라'는
문구가 있던데 이후 제 생각이 영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친구처럼 지내니 사이는 좋아요. 다만 뭔가 강력하게 할 수는 없고 은근히 도와주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겠다고 생각하죠.

 

추가Q4.젊은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후회없이 직업을 선택하고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조언하면?

 예전에는 말할 거리가 많았는데 지금은 저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사실 잘모르겠어요. 이렇게 살아야지 하면 어떨때는
되기도 하고 안될때도 있고. 저도 이 나이지만 늘 그렇게 살아요. 이것은 잘 안되네 하면서요.
 젊은 사람에게 굳이 말하자면 자기가 참 좋아하는 일, 자기 인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그런 어떤 것을 찾아내면
기본적으로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 비록 힘들더라도...  내 일이 힘들더라도 자신이 너무 좋아하면 힘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데 누가 시켜서 하면 짜증나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 낸다면 행복할 것이다. 또 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고 좀 진정한 어떤 것을 살피면서 산다면 든든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은 들어요.

 지금은 제가 뭐라 할 수 없어요.나나 잘하자.

 

추가Q5.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저는 아직도 젊은가봐요. 하고 싶은 것이 그렇게 많아요. 꽃을 보면 다 그려보고 싶고 세상에 수없이 많은 이야기도
그리고 싶고, 애니메이션도 하고 싶고 만화도 하고 싶고
지금은 그것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가능하게 하느냐.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니까. 차근차근 해나가야겠다하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만화가 잘 된 것은 애니메이션도 하고 같이 연동해서 할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고도 있어요. 

 

추가 Q6. 고향 울산에 대한 느낌은?
자신의 마음속에 사랑하는 곳, 채워지는 곳이 있으면 좋은데 고향이 바로 그런 곳이죠.

지금도 어머님이 계시고 친지들 있는 고향이 건재하고 사랑하는 고향이 있다는 것이 내 삶을 든든하게 해주더라구요.
서사리가 난개발을 한다는 소문도 걱정이 되고. 울산 시민들이 자랑하고 울산이 제일이야 이런 마음을 갖고 살면 좋지 않을까.
울산은 산과 바다가 있고 태화강이 흐르고 유적이 있고 세계에서 골고루 어울어진 곳은 많지 않아요.

 그때가 사랑스럽고 좋으면 모든 것이 기억이 잘 나죠. 서사에서 선배중에 내가 일학년때 5학년인 김재복이란 신기한 형이 있었어요. 자기 집에 토끼도 기르고 온갖 새도 기르는데 새 도사예요. 저는 꼬봉, 조수죠. 형이 저를 데리고 다니며 그냥 가다가도 새집이 있는 것을 알아내고 길가다가 돌멩이 있는 것을 봐도 새가 있는 것을 알고. 나는 비슷한 것을 보고 아무리 시도해도 새가 안 나와요.

그리고 비둘기는 알을 두해만 낳는다든지 새매라는 매는 남의 집에 알을 낳는다든지 다 알고 냇가에 물새집을 발견해
잠복해서 기다리다 어미새가 안에 들어가면 잡고 기다리고 키워요. 어느 새는 무엇을 먹이는 것이 좋은지 등 다 아는 거예요.

너무 너무 신기한 형이었요.지금은 농사짓고 계시는데요.다시 가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추가Q7. 고향인 울산이 어떤 도시가 됐으면 하는지?
 어렸을 때 울산이 인구가 5만이예요.읍내 성내라고 부르고. 울산은 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팽창한 도시 중 하나죠. IMF니 해서

다른 곳은 모두 돈이 말라고 울산은 돈이 안 마르고 최강의 노동운동도 있고. 울산은 막강한 공업도시이고 역동적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풍요로운 도시죠.
울산이 그동안 노력해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팽창한 도시가 됐는데 이제는 가치있고 멋있고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생각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먹을 것이 있으니까. 돈 버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문화쪽에는 신경을 많이 못 썼거든요. 

울산은 원래 자랑할 수 있는 문화, 선사시대 최고의 문화를 자랑하는 반구대 암각화가 있고 경주 인근에 있어 문화로도 굉장히

발전한 도시였죠.  그러니 이제 울산에 태어나서 잘 살았다는 말도 좋지만 문화 예술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오늘 하루 넘어가는 해를 별을 바라볼때 참 아름답다고 하듯이 울산에서 살아서 참 행복했다, 아름다웠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신경을 썼으면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