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이야기

집 팔고 세계 여행 떠나는 가족 이야기

이영남기자 2012. 2. 24. 10:13

 

40대 부부, 세 자녀와 캠핑카타고 32개국 여행 준비기

 

 "새들도 자기 집을 짓는데 인간이 못 짓겠어요?"

울산시 울주군의 볕이 잘 드는 언덕, 그곳에서 손수 집을 짓고 있는 40대 부부를 만났다. 외부 공사가 마무리 단계인 집은 밖에서 보기에는 양철지붕의 시골 오두막처럼 보였지만 집 안에 들어섰더니 전망 좋은 커피숍에 온 것 같았는데 부인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제가 창문이 많은 집을 좋아해서, 일반적인 단독 주택과 달리 큰 창문을 집의 앞과 뒤에 많이 냈어요.”

 

 

 

박미진-최동익 부부는 지난해 6월부터 자신들의 배 과수원에서 반년 이상 손수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짓고 있다. 건축가가 아닌 가족이 살 집을 직접 짓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동기가 더욱 놀랍다.

이들 부부는 자녀 3명을 데리고 올해 4월부터 무려 1년 동안 유라시아 대륙을 차를 몰고 횡단하는 여행을 가기로 했고, 집 짓기도 그 준비 중 하나다. 1년 동안 세계여행에 필요한 경비 1억5천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부는 현재 살고 있는 남구 도심의 50평형짜리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대신 여행에서 돌아온 뒤 살 집을 마련하려고 건축 재료를 사서 20평짜리 오두막을 시골에 직접 짓고 있는 것이다.

“새들도 자기 집을 짓는데 인간이 못 짓겠어요. 처음 나무를 베고 바닥 기초공사를 하는 것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그 뒤 공사에 들어가는 모든 과정은 우리 손으로 하고 있어요. 저희 부부가 반년 이상 매일 아침 8시반부터 5시반까지 10시간 정도 일하죠. 제(박미진씨)가 집을 짓다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힘은 들었지만 우리 집을 직접 설계하고 짓는 일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맛보았죠. 아이들도 집은 마트에서 사오는 포장된 공산품 같은 것이 아니라 땅 위에 ‘짓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대요. 아이들도 가끔씩 작업에 참여시키고 인터넷에서 자재를 구입하고 집짓기 전 고사도 함께 지내며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죠.”

 

 

 

 

 

온 가족이 캠핑카로 개조한 버스를 몰고 1년 동안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대장정이다. 울산에서 출발해 북한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 몽골, 핀란드, 프랑스 파리까지 가서 에펠탑을 본 뒤 다시 터키와 중동, 베트남과 태국, 미얀마 등을 통해 육로로 되돌아오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아시안하이웨이’를 따라 32개국 14만 킬로미터를 달리는 대장정이다. 북한 통과도 희망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은 입국 허가를 받기 어려워 중국 단둥을 출발해 유럽 파리까지 간 뒤 돌아오는 일정이 될 예정이다.(아시안하이웨이는 ‘길을 통해 아시아를 하나로 묶는다’는 목표로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가 1980년대 이후 아시아 32개국 14만여㎞ 도로망을 연결한 사업이다. 부산에서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면 ‘아시안하이웨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나온다.)

“고향인 울산이 여행의 출발점이예요. 유라시아 대륙의 끝자락에 있는 울산은 외곽을 뜻하는 극동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의 시작점, 출발점이니 대단하지 않아요?”

 

 

‘이 다음 언젠가는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세계일주여행을 해야지.’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 이렇게 꿈꾼다. 하지만 꿈 꾸기는 쉬워도,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남편 최동익 씨는 혹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을 훌쩍 지나 지천명을 바라보고 있고, 부인 박미진 씨도 45살이 됐지만 세계여행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슬슬 노후준비를 시작하고 안정을 추구하고 싶은 나이가 아닐까?

“새해에는 제가 한국나이로 49살이 됩니다. 기득권을 영유하고 안주하고 싶은 나이죠. 그래서 오히려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번 여행을 다녀온 뒤 가진 것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남편 최동익 씨는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일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다. 그는 2010년 울주군 옹기엑스포의 전시팀장과 남구 고래박물관 건립 당시 기획 업무에 참여했다. 언제든 돈을 벌 수 있는 프리랜서이기에 월급쟁이 직장인들은 꿈도 못 꾸는 직장을 벗어난 여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가족을 데리고 목숨을 걸고 하는 여행입니다. 우리는 떠날 수만 있다면 대성공이고,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꿈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의 다른 선택입니다. 이번 여행은 풍족한 관광이 아니라 투쟁입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추진하듯이 준비합니다. 32개국 통관을 위해 대사관마다 서류를 발급받아야하고 온갖 비상 상황에 대비해야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얻고 싶은 것은 새로운 곳에 나를 한번 놓아보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보자는 거죠.”

어른들이야 그렇다 쳐도 자녀들은 어떨까? 3월이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딸과 중학교 2학년과 1학년이 되는 두 아들도 한 학년을 휴학하고 떠나기로 했다. 일주일만 학업을 쉬어도 뒤쳐질까 안달하는 보통의 학부모들은 중, 고등학교 자녀가 1년 동안 학교를 떠나도 될지, 여행에서 돌아온 뒤 다시 적응하기는 괜찮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아이들은 부푼 기대감에 들떠 있지만 어른들은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합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새로운 환경에 한번 놓아보면 무엇이든 느끼게 되겠죠. 여행하면서 나름대로 학업을 계속 하겠지만, 무엇을 ‘배운다’ 라기 보다는 ‘느꼈으면’ 합니다. 다른 환경에서 개방된 것을 접하면서 일반적인 가치, 즉 돈이나 가진 것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 기준을 세웠으면 합니다. ‘내가 중요한 만큼 남이 소중하고 내가 인정받으려면 남을 인정해줘야 한다.’ 뭐 이런 것을 배웠으면 합니다.”

 

1년 동안 차를 몰고 32개국을 거치는 여정. 국제어인 영어는 물론이고 주요 외국어 몇 가지는 익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부부는 이런 생각도 뒤집는다.

“솔직히 우리가 외국어는 잘 못합니다. 외국어를 몰라 의사 소통이 안돼 더욱 좋습니다. 외국어 실력이 있으면 ‘지식’은 배우겠지만 ‘느낌’은 부족할 수 있습니다. 나라마다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시장인데, 더 많이 느끼면 족한 것 같습니다.”

 

결혼 18년차인 부부가 세계일주여행을 떠나겠다는 막연한 환상이 구체화된 것은 지난 2006년부터다. 막내 며느리이지만 10년 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박미진 씨는 당시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한달 동안 온 가족이 함께 유럽에서 캠핑 여행을 했다.

“살다보면 짐이 계속 늘어나 아파트도 좁다고 불평하지만, 한달 동안 캠핑카 안의 물건으로 살아지더군요. 프랑스에서 노르웨이까지 유명하다는 관광지도 많이 가봤지만 정작 아이들은 어디를 갔는지 기억을 못하더군요. 대신 어느 산에서 먹은 그 라면이 인생에서 가장 맛이 있었다, 뭐 이런 것을 기억하고 이야기하죠.”

 

사랑하는 사람은 단순히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 바라봐야 한다. ‘가족은 그 바라보는 시점이 공통된 것이 많아야한다.’ 고 이들 부부는 강조한다. 그래서 남편 최씨는 예전부터 일 때문에 해외 출장을 가더라도 자녀들을 동행하려고 노력했고, 온 가족이 밥통 하나만 달랑 들고 국내 여행도 자주 다니고, 추억을 많이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남편이 아파트를 팔고 1년 동안 세계여행을 떠나자고 폭탄급(?) 계획을 제안했을 때도 부인은 곧바로 찬성했다.

“저는 특별히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남편이 좋은 구상을 내니 따르게 됐죠.”

 

 

 

 

집을 팔고 자녀들을 데리고 세계여행을 떠나겠다는 부부. 친지들은 아이들에게 철 없는 부모를 만류하라고 설득했다가 오히려 설득을 당했다.

내가 만나본 부부는 마치 만화 주인공처럼 사는 듯 했다. (대륙횡단여행도 그렇지만, 반년동안 직접 집을 짓고, 시장에서 사온 난로에 만화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주인공 ‘카로시타’라는 이름을 붙이고 고구마를 구워먹고, 집 짓다 피곤하면 냇가에 사서 논다. 부부는 6년 전 한달 동안 유럽 여행을 떠날 때도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여행을 떠났었단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부부는 철이 없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인생에서 우선시하는 가치가 다수의 사람들과 다를 뿐이다. “누구나 돈 없고 빡빡하긴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빚 내서 여행 갔다 옵니다. 여행 갔다 와서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돈 모아서 여행 다녀오겠다는 사람이 많지만 그러면 평생 여행 못갑니다. 돈이 모이면 꼭 돈 쓸 일이 생기니까요.”

‘굳이 사찰에 있지 않아도, 요동치는 속세에서도 참선이 가능하다.’고 수행자들은 말하는데 가족들은 여행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여기 일상 생활을 하면서도 여행 가듯이 살 수 있습니다. 다만 계기를 만들기 힘느니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가서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나 자신을 보겠다는 것 뿐입니다.”

 

이 가족을 보면서 우리 인생에서 필요한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인지 모른다. 스스로에서 무얼 바라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건지 반문해보면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에 이른다.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은 행복이니까.

-글, 사진: UBC 이영남 기자(울산여성포럼 '울산여성'에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