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내일(5/25)이 불기 2559년 부처님 오신날인데요.
우리나라 불교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는 바로 울산출신의 구하스님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국불교 근대화의 초석을 다진 구하스님을, 스토리텔링 뉴스로 만나봅니다.
이영남 기잡니다.
리포트)
일제강점기이던 1936년 통도사의 포교당으로 설립된 해남사.
포교의 전진기지를 도심 한 가운데 설립해 울산 최초의 유치원까지 운영한 것은 당시 통도사 주지의 뜻이 반영됐습니다.
(CG)
부처의 말씀인 설법을 중시해 주지가 써준 '설법보전'은 지금도 중심건물의 현판에 걸려있고(OUT)
사찰이 배움과 문화 공간으로 개방되는 전통은 80년째 이어집니다.
인터뷰)만초스님/ 해남사 주지(사암연합회·종단연합회 회장)
"모든 창건 사찰마다 구하스님이 특별히 역점을 두신 사업이 바로 유치원 사업이었습니다.우리 사회, 우리 국가에 어떤 밑바탕이 되는 그런 교육에 매우 관심을 두셨구요.그런 관심들이 바로 이곳에 포교당을 만들고.."
약 100년전 통도사 주지였던 구하스님은 불교계의 중심축이자 선지자적 활동으로 불교 근대화의 산파로 불립니다.
구하스님은 1872년 울주군 두동면에서 태어나 12세에 내원사로 출가했으며, 27세 통도사로 옮겨온 뒤 옥련암에서 깨달음을 얻고 1911년부터 14년 동안 통도사 주지를 맡아 명실상부한 불지종가로 키웠습니다.
<스탠덥: 구하스님은 암울한 일제치하에서도 해남사를 비롯해 울산과 부산, 경남에 포교당 백여 개를 설립하고, 포교와 인재양성에 힘썼습니다.>
인터뷰)월파스님/ 구하스님 상좌(문수사 주지)
"자기 상좌가 아니라할지라도 머리가 좋고 재주 있는 이는 전부 외국 유학을 보내 졸업을 시켜서.."
명신학교 등을 설립하고, 동국대의 전신인 불교중앙학림 학장을 맡으며 전 종정 월하 스님 등 30여명의 제자를 배출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불교계를 대표하면서 친일행적 의혹을 받았지만,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내는 등 독립운동을 물밑에서 지원했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인터뷰) 현문스님/ 구하스님 손상좌
"독립자금을 보낸 내력이 다 나옵니다. 심지어 안창호 선생에게 누구를 시켜 돈을 보냈다는 것, 엄청난 돈이었어요."
근대 불교의 초석을 다진 구하 대종사는 1965년 세수 93세,법납 76세로 입적했습니다.
이밖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성수스님, 중앙종회 의장을 지낸 벽안스님, 불국사 주지를 지낸 성타스님, 백양사 회주인 목산스님, 흥덕사 주지인 영배스님이 불교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ubc 뉴스 이영남입니다.(2015.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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