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지금

'소금의 본고장' 울산..곳곳에 염전(스토리텔링)

이영남기자 2015. 8. 25. 08:03

(앵커멘트)  
 산업도시 울산이 조선시대부터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던 소금 생산지였다는 사실, 아십니까?

 60년대 초까지 염전이 넘쳐났는데, 흔적을 따라가면 산업 근대화의 뿌리도 엿볼수 있다고 합니다.

 스토리텔링 뉴스 이영남 기잡니다.

 

 (리포트)
 국내에서 유일하게 정제소금을생산하는 공장.

 용연 앞바다에서 취수한 바다물을 여과시켜 오염물질을 제거한 뒤 끓여 증류시키면 정제염이 나옵니다.

 연간 생산량은 17만 톤, 국내 식염 시장의 25%를 차지합니다.
 한주는 1969년 울산석유화학공단에 전기와 용수 등을 공급하는 국영기업에서 출발해 이후 민영화됐습니다.

 <<스탠덥: 이 회사가 공단에 유틸리티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소금을 생산하게 된 역사적 기원은 최소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터뷰)김광명/ 한주 상무

 "열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의 일환으로서 한주소금을 설립하였고 울산에는 예전부터 자염의 명소로 알려져 자염을 계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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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황강을 낀 일대는 반세기 전까지 마채염전이 있던 곳.

 이제는 공단과 갈대숲, 논밭으로 바뀌었지만
(CG1)1960년대 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기 전 사진에서도 염전단지들을 볼 수 있습니다. (OUT)
 마채염전에서 소금밭을 갖고 소금을 생산했다는 염주를 수소문해 찾아갔습니다.

 소를 이용해 써레질을 한 뒤 여과장치를 거쳐 연막 가마솥에 끓여 전통방식으로 만든 자염은
맛이 좋기로 유명했습니다.

 수십 호의 소금밭에서 생산된 소금들은 전국으로 팔려나갔고, 마을도 윤택했습니다. 

 인터뷰)유윤선(77세) 마채염전 염주

 "울산 소금은 너무 짜지도 않고 약간 뒷맛이 달콤하다고 달콤하다..그러니까 소금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지."

(CG2)이밖에 18세기 말 지도에도 태화강 하구에 규모가 가장 컸던 삼산염전이 나타나 있으며,
(CG3)1950년대 사진에도 돋질산 아래의 돋질염전,
(CG4)현대자동차와 명촌 일대의 명촌염전 모습이 나타나  울산의 4대 염전으로 불렸습니다. (OUT)
 염포라는 이름도 소금을 관리하고 유통시킨 곳이어서 소금 '염'자를 썼고, 주변 염전은
조선시대 경상좌병영이 직접 관리했습니다.
 
 (CG5)하지만 공업화 이후 석유화학공단과 현대자동차 등에 자리를 내줬고, (OUT)
 특히 자동차공장에 밀려난 명촌염주들은 정주영 대표이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벌였습니다. 
 
 인터뷰)한삼건/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울산은 조선초기 기록만 봐도 소금 덕분에 부자가 된 사람이 아주 많다는 기록이 있구요. 조선시대 내내 경상좌병영이 관리했습니다. 결국 군인들이 울산의 염전을 관리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만큼 중요하게 취급했고 역사가 오래된 울산소금이 없어진 것은 일제시대 거치고 특히 산업화입니다."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들은 항구와 역을 통해 수송되면서 여러 이야기를 간직한 소금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배성동/ '울산소금이야기' 저자

 "처용암과 덕하역의 중심에 있는 곳이어서 이곳을 부산과 울산을 잇은 솔트로드, 소금길의 중심으로 보면서 소금을 자원화시키는 소금박물관 내지.."

 

 철과 함께 양대 산업이었지만 근대화에 밀려 명맥이 끊어진 울산의 소금단지가 도시의 역사성 찾기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유비씨 뉴스 이영남입니다.(2015. 8. 23. ubc 프라임뉴스)

 

 기자 생각...

 우연이 데스크의 지시로 소금염전을 취재하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울산소금 생산의 명맥이 한주라는 업체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잘 몰랐던 내용이었습니다.

 주식회사 한주도 자신들이 왜 소금을 생산하게 됐는지, 그곳이 마채염전이 있던 곳 부근이었다는 점 등을

 불과 몇년 전에 알았다고 하더라구요.

 이보다 놀란 점은 소금산업과 현재 산업단지와 연결고리가 깊다는 겁니다.

 울산의 4대 염전은 이제 마채염전은 금호석유화학공장 등  울산석유화학공단으로

명촌염전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돋질염전은 한국비료와 삼성석유화학공장이 들어섰고,

삼산염전은 지금은 롯데백화점과 시외버스터미널 등이 들어섰지만 앞서 일제강점기

삼산비행장이 들어선 뒤 소금을 실어날랐던 곳입니다.

물론 자동차와 석유화학공단이 울산의 초석이 되고 있는 겁니다.

좋게는 근대화의 초석이라고 하지만, 당시 염주들은 밀려나 민원이 야기됐고 기득권을 잃었고,

울산은 산업의 큰 단면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기사에는 내지 않은 또다른 재미있는 것은 울산에는 나무들이 많아 조선시대 벌채가 허용되고 자염을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것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