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지금

겸재 정선 그림이 울산에..'반구' 실경은?

이영남기자 2015. 11. 16. 17:34

앵커멘트) 
 반구대하면 국보로 지정된 암각화부터 떠올리실텐데요.

 실은 이에 못지 않게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을 정도로 풍광 또한 수려하기 그지
없습니다.
 특히 조선시대 산수화 대가인 겸재 정선이 직접 찾아 작품으로 남길 정도였습니다.
 스토리텔링 뉴스, 이영남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산세가 마치 거북이가 엎드린 모양과 같다고 이름 붙여진 반구대.

 절벽을 휘감은 대곡천에 울긋불긋 단풍까지 내려 앉아 그림 같은 풍광을 연출합니다.

 (CG1)
 집청정에서 바라본 기암괴석은 비경인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3백여 전인 1700년대 그린 산수화의 구도와
일치합니다.(OUT)

 '반구'라는 제목과 '겸재'라는 호가 선명한 이 그림은 경북 하양 등에 현감으로 부임했던 정선이 실제 이곳을
찾아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터뷰)이재영/ 한국화가
 "'반구'라는 글씨가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스케치한 것을 보면 실물과 흡사하다는 것도 볼 수 있고요 그래서 제가 본 견해는 다녀가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겸재의 '반구'대 그림은 18세기 문필가 권섭의 소장용
화첩에 있다 2008년 처음 공개돼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실주의 그림 애호가였던 권섭은 1731년 반구대를
둘러보고 여행기도 남겼습니다.

 (CG2)
 "반구대에는 골짜기와 하천이 볼만한데, 대나무와 노송 사이로 붉은 복사꽃이 언덕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었다."(out)

 <<스탠덥: 반구대 주변은 예로부터 풍경 자체도 좋지만 시와 그림으로 더욱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인터뷰)김순천/ 부산 남산동  "너무 비경이 아름답고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 시가 절로 나올 것 같아요."
  선사시대부터 성지였던 반구대가 조선시대 명소가 된 계기는 포은 정몽주와의 인연이었습니다.

 정몽주는 1375년 언양에 1년 동안 유배를 왔고 시름을 달래기 위해 반구대를 찾아 시로 남겼습니다.

 (CG3)
 "용은 저무는 한 해가 근심스러워 깊은 골짜기에 숨고, 학은 갠 가을이 기꺼워 푸른
하늘로 오르네"(-정몽주, 반구대에서 지은시)(OUT)

 정몽주를 기리는 반고서원과 구강서원도 세워졌고, 권해와 권상일 등 문인들은 반구대를 찾아 시로 남겼습니다.

 인터뷰)신형석/ 울산대곡박물관장

"포은 정몽주 선생이 언양에 귀양을 와서 반구대에 와서 시름을 달래며 시를 지은 것이 남아있습니다. 그로인해 조선시대가 되면 많은 유학자들이 포은 선생의 자취를 찾아.."

 울산 12경 '반구대'를 품은 대곡천은 2009년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으로 선정돼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뉴스 이영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