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일제강점기 문법책을 집대성한 외솔 최현배 선생은 한글지킴이로 유명하죠.
하지만 반세기 전 이미 한글타자기를 개발하고 논밭을 한글연구에 기부하는 등 선각자로 살았다는 점은
잘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연속기획 2편, 외솔의 발자취를 이영남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양등리의 하천 주변 땅.
3백여 제곱미터의 땅의 소유주는 재단법인 한글학회로 돼 있습니다.
(CG-IN)
원 소유주였던 최현배 선생이, 1948년 증여해 한글학회로 소유권이 이전된 겁니다.(OUT)
<<스탠덥: 외솔은 광복 직후 이곳 땅을 포함해 자신의 논밭 만7천평, 5만6천 제곱미터를
모두 한글학회에 기부해 연구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뷰)김종택 / 한글학회장
"논밭을 전부 다 바쳐서 한글학회를 재단법인으로 만들어요, 1949년에. 논밭 만7천 평을 최현배 선생이 바친 것으로 기록돼 있어요. 지금 울산 태화강가에도 한글학회로 소유권이 돼 있는 땅이 있습니다."
1894년 울산 병영에서 태어난 최현배 선생은 주시경선생의 겨레사랑정신을 이어받아 우리글 연구와 보급에 한평생을
바쳤습니다.
외솔은 1929년 한글문법인 '우리말본'을 펴내는 것을 시작으로 한글학회를 이끌며 한글 현대화에 몰두했습니다.
허웅 박사와 윤동주 시인은 직접 지도했고, 수많은 학자들을 육성해 한글보급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인서트)외솔 최현배 선생 생전 육성(1958년) "애국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산촌,농촌,어촌에서 날마다 해가 뜨면 일어나 저물 때까지 일하는 그 사람이 진정한 애국자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반화된 가로쓰기와 한글 기계화도 처음 제시한 선구자였습니다.
외솔은 옥중에서 가로쓰기 연구를 계속해 1947년 '글씨의 혁명'을 펴내고, 광복 후 장관직을 고사하고
3년 동안 교과서를 만드는 편수국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반세기 전 이미 타자기 시대를 예견하고 개발을 시작한 것도 놀랍습니다.
1960년대 한글기계화연구소를 세워 한글전용 타자기 개발과 한글자판 통일을 완성했습니다.
인터뷰)이성태/외솔회 부회장
"외솔선생님은 '삼천리 방방곡곡에 빨래 다듬이 두드리는 소리처럼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때 우리가 미국,일본,영국을 앞설 수 있는 잘 사는 나라가 된다.'는 것을 미리 예측하신 분입니다. 그러면서 한글을 과학화하고 기계화해야 된다고.."
한평생 한글지킴이로 살다간 외솔의 행적을 연구한 후학들은 선생을 독립운동가와 학자 뿐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이자 성자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유비씨 뉴스 이영남입니다.(2015. 10. 6. 프라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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